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르샤바 전투(1920년) (문단 편집) == 작전 계획: 두 도박사의 오른손 펀치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iłsudski_bitwa_warszawska.jpg|width=100%]]}}} || || '''바르샤바 전투 중 지도를 읽고 있는 피우수트스키''' || 투하쳅스키는 바르샤바를 곧바로 정면공격하는 대신 포위공격할 계획이었다. 투하쳅스키는 1개 야전군으로 바르샤바의 동쪽을 공격하는 사이 나머지 3개 야전군을 바르샤바 북서쪽으로 우회시켜 브워츠와베크(Włocławek) 인근에서 [[비스와 강|비스와강]]을 도하하여 바르샤바를 포위하면서 동시에 폴란드가 유일하게 원조물자를 받아들이는 항구도시인 [[단치히 자유시]][* [[폴란드어]]로 [[그단스크]].]와 바르샤바를 단절시키려고 했다. 이 작전 계획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르샤바 동남쪽 뎀블린에서 [[부크 강|부크강]]에 이르는 기나긴 남쪽 측면을 그대로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이곳의 방어를 담당한 부대는 모지르 집단이었는데, 이 집단의 병력은 8천에서 9,400명에 불과했다. 약화된 사단급 부대에게 150km에 달하는 측면의 방어를 맡긴 것이다. 게다가 투하쳅스키는 전선에서 500km 떨어진 [[민스크]]에 서부전선군 사령부를 세우고 거기서 지휘했다. 당시 통신 기술로 바르샤바에서 벨라루스까지 전신이 도착하려면 18-24시간은 걸렸으니, 투하쳅스키와 서부전선군 참모진들은 사실상 전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우수트스키는 8월 5-6일 밤 사이 바르샤바의 벨베데르(Belweder) 궁에서 대담한 반격작전 계획안을 구상했다.[* 원래 계획안은 붉은 군대를 부크강에서 저지하는 것이었지만 붉은 군대가 일찍 부크강을 도하하여 소용없게 되었다.] 작전의 첫 번째 단계는 비스와강 서편으로 철수하여 바르샤바와 비에프시강의 교두보를 방어하고, 그 동안 전략적 공세이전을 위해 가용 사단의 1/4을 남쪽에 집결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유제프 할레르의 중부전선군 예하 3개 야전군 중 2개 야전군(1군과 2군)이 붉은 군대의 주공을 막는 사이, 나머지 1개 야전군(5군)은 모들린 요새 인근의 방어를 담당하다가 반격하여 전선을 돌파하고 서부전선군의 후방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부대는 피우수트스키 자신이 직접 지휘할 2만 명 규모의 충격집단(Grupa Uderzeniowa)이었다. 남쪽 전선의 최정예 부대들로 구성된 이 부대는 바르샤바 남쪽의 비스와강과 비에프시강 사이의 삼각지대에 주둔했다가, 북쪽으로 빠르게 진격하며 모지르 집단을 산산조각내어 서부전선군과 남서전선군의 접촉을 끊어버리고, 서부전선군을 혼란에 빠뜨리고 그 예비대와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작전에 따르면 5군과 충격집단은 동프로이센 국경지대 근처에서 합류하여 서부전선군을 포위하기로 했다. 요약하자면, 바르샤바 북쪽에서 1군과 2군이 서부전선군의 주공을 받아내는 사이 5군과 충격집단이 "송곳니"가 되어 서부전선군을 고립시키고 포위섬멸하는 것이 피우수트스키의 작전안이었다. 투하쳅스키처럼 피우수트스키가 세운 작전 계획도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피우수트스키가 제안한 각 부대의 집결 지점은 원 위치에서 150km에서 250km나 떨어진 곳인데다, 부대 대부분은 이미 전선에 투입된 상태였다. 그리고 예정된 폴란드군의 재집결 지점은 모두 적군을 쉽게 공격할 수 있는 거리 이내로 계획되었는데, 따라서 만일 피우수트스키와 그의 참모진이 붉은 군대의 공세가 시작될 시점을 잘못 파악할 경우 반격 작전은 물론이고 각 전선이 모두 혼란에 빠질 수도 있었다. 피우수트스키 자신도 회고록에서 스스로 '도박'이었다고 인정했을 정도였다. 프랑스 군사절단은 폴란드 측에게 적군을 30km 정도 후퇴시키는 전술적인 반격작전만 벌여 휴전협상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설 것을 제안했고, 폴란드군 참모총장 타데우시 요르단로즈바도프스키는 비에프시강에서 붉은 군대의 전선을 깊이 돌파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피우수트스키는 단순히 적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가용병력을 총동원하여 전황을 일거에 뒤집기를 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